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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동에서 온 편지

2011-05-30 16:37:06
관리자

(폭우속의 농심, 폭우는 내려도 농심은 쓰러지지 않습니다. 폭우를 뚫고 물고를 보러 나오신 할머니)




<더 많은 사진과 하동의 서정을 느끼시려면 클릭 ☞ http://blog.naver.com/runnercho)


매실, 개선장군으로 오월성에 입성하다!




3월의 찬바람도 달구어 냈던 매화를 기억하시는지요?


유난히도 모질었던 지난 겨울에도

매화나무가 얼어 죽었다 거나 매화꽃이 추위에 떨어졌다는 말 듣지 못했습니다.


금산에서 오신 분들의 얘길 들으니

그곳에는 대나무가 동사해서 붉게 타 버렸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고 보니 이곳 하동의 대나무들도 제 색깔을 갖지 못한 듯 보였습니다.



겨울에 피는 동백나무는 어떤가요?


선배들 졸업식이 다가오는 날이면 이웃 동네 울타리 동백나무를 몰래 베어다

밤새도록 꽃다발 만들었던 겨울의 화신 동백나무도

지난 겨울에는 제대로 배겨내질 못했습니다.


녹차는 또 어떻습니까?

70%이상이 동해를 입었고 녹차가 아니라 붉을 적자를 써서

적차(赤茶)라 불러야 할 정도로 지금도 붉게 변색되어 있습니다.


그 와중에서도 유독 매실나무만이 화려한 꽃으로 환생하여

마치 봄의 출정식이라도 거행 하는 듯한 면모를 과시했었습니다.


그 매화가 전쟁터를 향하여 떠난 지 불과 두 달 여 만에

개선장군이 되어 돌아 온 것입니다.


그 당당함, 그 푸르름, 그 완벽한 변신,

동백, 대나무, 녹차와 같은 기라성 같은 경쟁자를 물리치고

매실이 봄의 화신에서 초여름 오월의 개선장군으로

입성을 하고 있습니다.




(한참 물이 오른 매실, 앞으로 보름만 지나면 수확기에 접어들게 됩니다)



참, 동백나무사건을 경험해 보셨는지요?

꽃다발을 만들기 위해서는 치밀한 계획이 수립됩니다.


대낮에 동백나무의 위치와 크기를 파악하기 위해 정찰조가 투입되지요.


드디어 어둠이 내리고 특수복장을 갖춘 공격대가 편성되어

행동에 돌입하게 됩니다.


완전범죄를 저지르고 아지트에 도착한 시간은 보통 밤 10시경,

이때부터 분업에 들어가 짚으로 꽃다발 틀을 만드는 조,

색종이로 꽃을 만드는 조,

동백나무를 다듬는 조...


작업이 마치면 새벽 2시경,

바케스에 라면 끓여 한 그릇씩 들여 마시고 집으로 돌아오면 임무가 종료되지요.


대부분 완전범죄로 끝이 나지만

운수가 안 좋은 날이면 동백나무 주인으로부터 발각되어

호되게 당하는 일도 발생하는데,

이것을 동백나무사건이라고 부릅니다.


(김병종교수님의 바보예수, 심센은 꼭 바보예수를 닮았습니다)


성자 심센


"나는 미래의 희망을 먹고 사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추억을 먹고 산다"

제가 자주 주변 분들에게 하는 말입니다.


미래를 향한 큰 포부와 꿈을 말하지 못함에 대한 부끄러움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솔직히 저를 움직이고 있는 것은 미래를 향한 원대한 포부가 아니라

동심의 세계에서 겪었던 어릴적 추억인 것 같습니다.


저의 아내도 지리산과 덕유산 정기를 받고 태어 난 함양댁입니다.

중학교 때 함안으로 전학을 가서 성장했지만

늘 어렸을 때 철모르고 놀았던 그곳의 추억을 되 뇌이곤 합니다.


그 중에 대표적인 것은

계곡에서 멱을 감으면서 바위에서 비닐포대타고 내려가다가

옷이 닳아 찢어진 사건,


얼마나 바위를 탔으면 구멍이 났겠습니까?

헤헤! 생각만 해도 우습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지금을 살아가고 있는 힘이라고 합니다.


한 번 씩 지금 크는 아이들은 무슨 재미로 살까?

다음에 커서 무슨 추억을 말할까?


이런 얘기들을 둘이서 나누곤 합니다.


저의 어릴적 추억은 거미가 거미줄을 풀어내듯이 술술 풀어낼 수 있지만

그 중에서도 저의 머리에 지워지지 않는 한 분을 소개 하고자 합니다.


몇 년 전, 써 놓았던 글을 그대로 옮겨 봅니다.


우리는 그를 심센이라 불렀다.

칠순을 넘긴 노인도, 이제 갓 말을 배운 아이도 모두 심센으로 통했다.


심센은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는 몇 평 안 되는

작은 외딴집에 살고 있었다.


국가에서 지어 준 집이지만

겨울에는 불을 지필 수 있는 아궁이도 없고

여타 일체의 편의시설도 없이 단지 방 한 칸이 전부였다.


심센은 사계절이 없었다.


여름에도 두터운 외투를 입고 다녔으며

손에는 항상 지팡이와 종이조각, 신문지, 잡지 등을 들고 다녔다.


식사는 매일 마을을 돌아다니면서 걸식하였다.

가난했던 시절이었지만 그 어느 집도 심센을 그냥 돌려보내지 않았다.


먹다 남은 식은 밥이라도 한술 차려 주었으며,

혹 밥을 다 먹고 남은 밤이 없는 집에서는

“오늘은 밥이 없으니 내일 오라”고 했다.


심센의 외모는 사상가나, 철학가, 아니면 유명한 음악가 같았다.


외투, 지팡이, 터벅하지만 정리된 하얀머리와 하얀 콧수염,

낡았지만 항상 구두를 신고 다녔다.


어린 나이에 심센에 대하여 한 가지 알고 있었던 것은

심센은 일제시대 때 항일 운동가였으며, 매우 학식이 많이 들었고

일본 사람들 로부터 고문을 받아 온전한 정신을 잃어 버렸다는 것이었다.


초등학교 때 글짓기나, 시를 지어오라는 숙제가 있으면

종이 한 장씩을 들고 심센이 사는 집으로 가서 시를 적어 받아오기도 했다.


심센은 철저한 예절가였다.


어느 누구 집에 들어가서 밥을 먹게 되더라도

반드시 모든 식구들에게 무릎 꿇고 큰 절로 인사를 했으며

식사를 마친 후에는 부엌에서 일하는 부녀자들과

심지어 나이어린 꼬마에게까지 감사의 인사를 하고 갔다.


나는 심센을 존경하기까지 했다.


한 달에 한두 번 찾아오는 심센을

한 번도 불쌍하다든지 밉다는 생각을 해 본적이 없다.


내가 군대에 입대하고 첫 휴가를 왔을 때

형님으로부터 심센이 죽었다는 말을 들었다.


그 서운함은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심센은 나의 고향 면사무소 맞은편 낮은 산자락에 잠들어 있다가

대전 국립묘지에 이장되었다는 소식을 최근에야 들었다.


모습과 심성까지도 꼭 예수님을 닮았던 심센,

그는 성자였다.



(매암다원과 매암차박물관 전경입니다. 하동속의 또 다른 세계입니다)


대한민국 근대문화유산 1호, 매암차박물관



부도덕 했던 과거는 청산되어야 하지만 말살되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더욱이 왜곡되거나 오인되는 경우는 더더욱 막아야 합니다.


과거 역사를 부끄러운 역사로 치부하고

모조리 때려 부셔버려 역사적 교훈으로서의 보존까지도 못하게 한다면

과거를 부정하는 일이라 하겠습니다.


우리나라 국민은 비교적 새 것을 좋아하는 국민성을 가진 듯 합니다.

그 부분에서는 저도 예외는 아닐 것입니다.


지난 해 군의 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