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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PAK 뉴스레터 5월호 이준상 자문위원 인터뷰

2011-05-30 17:01:27
관리자

IPAK 뉴스레터 5월호 이  준상 자문위원 인터뷰



Q1 건강은 어떻게 관리하고 계십니까? 근황은 어떻습니까?


건강에 관해서는 한마디로 전전긍긍 한다고나 할 까요?  원래 약골인데다가 고교시절 운동하다가 허리를 다친 후 간헐적으로 찾아오는 허리 디스크 악화와 알레르기성 천식에,   요즘엔 목 디스크 까지 겹쳐, 기동성이 취약해져서,  우리 IPAK,  정보처리학회, 금융정보연구회 등 정기 세미나와 각종 행사나 친목모임에 참석할 수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어차피 남이 대신 아파 줄 수도 없으므로 차라리 상황을 그대로 인정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2년 전에 허리 디스크 가 재발되어 병원에선 수술을 권유하였으나 이를 보류하고 대안으로 매일 아침   병원에서 준 지침서  대로 1시간30분씩 허리근육 강화운동을 계속하고 있는데 많은 효과를  보고 있습니다.      

아울러 나들이 때에도  물건은 아내가 들고 다니고, 30분이상의 운전과 PC작업은 가급적 피하고 가벼운 운동을 꾸준히 한 결과 상태가 많이 호전되고  있습니다.       

요즈음엔 집 주변의 산책, 가벼운 등산이나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골프장 출입도 가끔  할 수 있게 된 것을 다행으로 생각하며 지냅니다.

근황이라면, 요즈음은 후배가 경영하는 조그마한 회사의 고문을 맡아 주에 한두 번 자문에 응하고, 강의 한 과목 하고, 가끔 고향에 가서 나무도 가꾸고,  12대에 지파 종손으로서  각종 문중일도 하며 지내고 있습니다.     건강이 더 좋아지면  책도 더 읽고,  산행이나  각종 모임에 자주 참석하려고 합니다.   또한  지금까지 주위의 여러분들에게 받은 많은 도움과 혜택에 조금이라도 보답하고 감사한 마음이라도 전하기 위해  노력하며 제3의 인생을 살아가려고 합니다. 


Q2 유소년시절(초, 중, 고 시절) 한국의 사회상은 어떠했습니까? 어떻게 성장하셨습니까? 성장하시면서 무엇을 느꼈습니까?


우리세대는  해방, 건국,  6.25,  4.19,  5.16,  이어서 급속한 산업사회 건설 등 격변의 시기를 몸으로 격은 세대로서 빈곤, 경제발전, 성숙한 사회를 향한 충돌 등을   몸으로 겪었으나  그동안 언론 매체나 관련 서적 등에서 자주 다룬 내용이므로 긴 설명은 생략하겠습니다.  다만 우리세대의 중학교 시절엔 일인당 GNP 가 미화 80불, 제가 대학교에 입학하든 1964년의 연간 수출목표가 단 1억불이었는데 그간 1인당 국민소득 20000불,  총 수출액 4500억불의 국가로 발전했습니다.    이런 과정에서 어떤 어려움도 노력하면 극복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사고방식과 고난에 대처하는 능력이 몸에 밴 것 같습니다.  

Q3, IT분야에 일하시게 된 계기는 어떤 것이 있었습니까? 취미활동과 전문분야의 관계는 어떻다고 생각하십니까?


은행에 입행해서 조사부에서 근무할  때만해도 IT분야에 대한 지식도, 기술도, 관심도 없었습니다.   단지 공부를 더하고 싶으나,  그때에는 재벌이나 특수층이 아니면  자비유학은 꿈도 꿀 수 없는 시대였으므로 유일한 희망인  은행의 학술연수 선발시험에 응시했고, 시험에 합격하여 미국 유학을 한 것이 IT에 몰두 하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당시, 은행에서  몇 년 만에 한두 명 선발하는, 외국 학술연수는  학비, 여비, 본인과 가족의 생활비 등 모든 비용을 은행이 부담하는 파격적인 기회로서 모두가 선망하는  프로그램이었습니다.  단, 은행의 해외연수는 2년간의 석사과정만 지원하므로 경제학은 포기하고 MBA 과목과 IT과목을 추가하여 이수했고,  이것이 은행근무의 상당기간을 IT업무에 종사하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유학을 마치고 귀국하자 바로 IT부서에 발령이 났고 큰 혜택을 받은 처지에 아무 말도 못하고 부서장이 될 때까지 장기 근무를 하게 되어 본의 아니게 IT주특기가 되었습니다.   대 프로젝트를 끝내고서야 원위치하여 지점장과 본부 부서장을 할 수 있었습니다. 

두 번 째 질문인 취미와 전문분야에 관하여는 이들 양자가 일치되면 인간적으로 매우 행복한 경우겠으나 아쉽게도 저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대학에서는 경제학을 전공하고 우리나라 경제발전에 아주 적은 기여라도 하는 것이 꿈이었으나, 직장과 대학원에서는 경영과 IT를,  12년간 겸임교수로서 대학과 대학원에서 주로 IT과목들을 강의했으나, 어느 쪽도   제대로 하지  못 한 아쉬움이 남습니다.  


Q4. IT분야에서 아이디어 또는 제안했던 것 중, 기억에 남는 것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1990년, 제가 외환은행 전산개발실장 재직 시,  2년간 200명의 직원들을 통솔하여 당시 외환은행 역사상 최대의 IT 프로젝트인  차세대 시스템 개발에 성공했는데, 당시 금융권에서 최고의 시스템으로 평가되어 산업, 보람, 충청은행에서 강력한 매도요청이 쇄도하여  거액에 판매함으로서, 금융 IT역사에 특이한 사례를 남긴 바 있다.   그 외 금융결제시스템의 기초인  현금 처리기(ATM) 의 은행간 공동이용시스템 기본계획수립, 지금은 일반화된 현금 입출금의 점포외 이용 및 년 중 무휴시스템의 기반을 국내 최초로 시작한 것 등을 보람으로 간직하고 있습니다.


Q5. IT산업에 지금은 무슨 문제라고 생각하십니까? 이를 어떻게 풀 수 있을까요?

    공교육은 어떻게 변화되어야 한다고 보십니까?


그동안 우리가 인터넷 강국이니, IT기술의 세계적 수준이니 하고 홍보성 표현들을 했으나  좀 과장된 부분도 없지 않다고 봅니다.   실제로 원천기술이나 학술적 발전은 좀 미흡했다고 생각합니다.      IT산업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서는 이용기술의 발전을 뛰어넘는 원천 기술 및 기본 SW의 개발능력을 배양하고 이를 지원하는 민 관 학 연구소의 집중적 노력과 투자가 뒷받침되어야 경쟁이 격화되는 세계시장에서 생존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공교육은 각급 교육기관이 현재와 같이 창의력보다 주입식교육 위주로 나가다가는 국가 사회는 물론 개인들의 장래도 암담하다고 생각한다.   대단히 어려운 과제이나 모두가 지혜와 힘을 합쳐 해결해야 할 것이다.


Q6. 향후 30년 계획이 있으시면 말씀해 주십시오.


내 건강이나 연령에 비추어 30년 계획은 무리고 한 10년이라도 지난 인생에 심히 허술했던 부분을 보완하고 짜임새 있는 생활을 할 계획입니다.

심신이 약해지니,  이제부터 새로운 판을 벌리기 보다는, 우선 마음을 비우고  인생을 잘 마무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아울러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에게서  받은 많은 도움과 혜택에 조금이라도 보답할 수 있도록 가능한 최선을 다 하고자 합니다.  


Q7 음주에 대한 견해를 좀 말씀해 주십시오.


지금은 술을 마시면 알레르기 천식이 발발 (의학용어로는 발작이라고 함) 하여 거의 금주하고 있습니다.  전에 직장에 다닐 때에는 업무상 거의 매일 술을 마셨습니다.  술은 마시면 취해서 기분을 좋게 하는 효과를 발휘하므로 영업이나 인간관계를 개선하는 데에는 필수 불가결한 물질이라고 생각 합니다.  그런 좋은 것을 피해야 하는 자신이 서글퍼 질 때도 있습니다.


Q8 가장 존경하는 멘토는 누구입니까? 어떤 메시지를 받으셨나요? 추천할 만한 책은?


제가 외환은행 본부 부장으로 근무할 때 모셨든 허 준 행장님입니다.   그분은 매사에 합리적이고  부하직원들이  소신껏 편안하게 일할 수 있게 해주셨습니다.  자신에게는 매우 엄격하면서 조용한 인품과 추진력 및 청렴성을 두루 갖추신 분이셨습니다.   4.19후에 과도정부의 내각수반을 지내셨든 허정 씨의 자제분으로 부친의 명성에 뒤지지 않는 훌륭한 분이셨습니다.  우리나라 금융계의 혁명이라고 할 수 있는 금융실명제가 실시된 1993년 8월 12일 토요일 오후의 일은 지금도 기억에 생생합니다.   행장께서 극비에 청와대의 부름을 받고 가시면서 본부 주요부서장 4명에게 직접 전화를 거셔서 절대 보안 속에  대기할 것을 지시하고 가셨다가  저녁 늦게  돌아오셔서 우리를 불렀습니다.    행장실에서 대책회의를 하고 하루 후인 월요일부터 실시되는 엄청난 변혁에 대한 만반의 준비를 지휘하시는 모습에서 나는 큰 감동을 받았고 그 후 나의 인생의 귀감이 되었습니다. 

     

Q9 오랜 경영 활동에 어려움이 있었으리라 봅니다. 이를 어떻게 풀었습니까?


업무에 아무리 큰 어려움이 닥쳐도 긍정적 생각과 희망을 갖고 노력하면 결국 잘 풀려나갔던 것으로 기억된다.


Q10 취미생활은?


학생시절에는 우표, 화폐, 서적 수집 등 다양했으나 직장일이 바빠지면서 중단되었습니다.    요즈음은 산에 가서 나무나 야생의 풀 꽃 등을 감상하거나 이름 모를 새 소리를 듣는 것도 조용한 즐거움이 됨을 느꼈습니다. 


우리 협회 관련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Q11 가장 기억에 남는 우리협회의 행사가 무엇이었습니까? 왜 그 행사이지요?


제가 IPAK 제13대 회장이던 2006년 6월 23일 20회 정보인의 날 행사와 함께 우리나라 컴퓨터 도입 40주년의 뜻 깊은 기념행사를 정부, 관련 기관, 단체와 함께 주최했든 일입니다.

   **  정보인의 날은 매년 6월 24일인데 2006년에는 24일이 토요일이어서 23일에 행사를 했음**


Q12 입회를 고려중인 분에게 입회 안내를 해주십시오.


우리협회는 일반기업, 관계, 학계, 연구기관 등 IT 관련 각 부문의 중견층 간부들로 구성된 전문가 단체입니다.   올해로 26회를 맞는 대한민국 소프트웨어 공모대전, 매년 정보인의 날 행사 주관,  매월 정기 조찬세미나 개최,  등산, 바둑, 강남 강북 서부지역모임 등, 회원간의 정보교환과 유대 강화에 기여하는  유익한 단체입니다. 



Q13 우리 협회는 어떻게 가야 할지요? 회원이 젊어질 수 있는 방법은? 앞으로 회관은 어떻게 발전시키는 것이 좋을 까요?


우리 IPAK은 정부소속 협회 외에는, 임대료 수입이 있는 자체 건물과 기금을 보유한, 규모는 작으나 내실 있고 26년의 전통을 간직한 긍지 있는 단체라고 생각합니다. 젊고 역동적인 회원이 많아지는 것은 바람직하나 급격한 변혁이나 규모의 확대보다는 정체성을 유지하며 견실한 발전을 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Q14 10년 후는 어떤 사람들이 각광은 받을까요?


응용 기술이나 공학의 평준화가 심화되어 장래에는 물리학, 수학, 생물학 등 순수 학문과 인문학, 철학 등 본원적 학문을 심도 있게 한 사람들이 각광받게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자문위원님의 추천을 듣고 싶습니다.

Q15 추천할만한 음식점은 어디 입니까?


음식점은 오랜 전통을 갖고 있는 무교동의  용금옥, 하동관, 부민옥 오장동 냉면집 등이 특징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Q16 가족을 소개해 주실 수 있으신지요?


  박봉과 가족들에게 잘 해 주지 못한 남편에게 평생을 헌신하고 있는 아내,  착하고  제 앞가림을 잘 해 결과적으로 우리 내외의 노후 자금조성을 도와 준  남매와 사랑스런 새 며느리가  있습니다. 


Q17 향후 5년간 인생 설계는 무엇입니까? 마지막으로 회원에게 덕담 인사를 부탁드립니다.


앞에서 향후 10년 계획 안에 5년 설계가 포함된 것으로 간주하고 5년 설계는 생략하겠습니다.


저는 제가 아는 IPAK 회원님들 모두를 존경합니다.    따로 드릴 말씀은 없고 요즈음 경기가 안 좋아 고생하는 분들도 있으시겠지만 앞으로 좋은 일만 있으시길 기원합니다.

 

오랜 시간 이렇게 인터뷰에 배려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올 한해 자문위원님에게 건강과 영광이 함께하시기를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