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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PAK 뉴스레터 6월호 김계철 기술원장 인터뷰

2011-06-28 11:40:16
관리자

IPAK 뉴스레터 6월호 회원 인터뷰


   김  계철  회원님,


  안녕하십니까? IPAK 웹진 6월호에 인터뷰를 승낙해 주셔서 회원을 대신하여 감    사 드립니다. 마음 편히 진솔이 하신 답변이 회원들에게 진정한 가치로 전달되었    으면 합니다.


Q : IT분야에 일하시게 된 계기는 어떤 것이 있었습니까? 취미활동은 어떻게 하고 계십니까? 이런 취미활동이 전문분야의 업무와는 어떤 영향이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


제가 IT 분야에서 일하게 된 계기는 전혀 뜻밖의 계기가 있었습니다. 저의 첫 직장인 동양정밀공업㈜의 통제실에 근무할 때입니다. 통제실은 당시 동양정밀 기획실 기획5과에 특수 임무를 붙여 만든 새로운 이름입니다. 이 시절 동양정밀(OPC)은 교환기 제조와 군 통신장비 그리고 지하철의 CCTV, Gate 머신, 티켓 자동판매기 제조 업체로서 대부분의 매출이 관납업무이고 민수로는 PC, 프린터, HDD를 자체 브랜드로 생산 판매하고 OEM 생산으로는 CRT 터미널을 미국 텔레비디오사에 !00% 수출하는 나름 안정적인 기업이었습니다. 이 안정적인 기업에서 제가 맡은 업무는 부품도 아닌 완제품 재고관리이었는데, 하는 일이 너무 단순했습니다. 즉 전국 5개 공장의 전월재고 + 금월생산  금월출고  = 금월 재고를 매월 집계 보고하는 형태로 고졸 여직원도 할 수 있는 업무이었습니다.

타 직장으로 전직해 볼까 하는 갈등도 있었지만 회사의 생산제품이 국가적으로 보람된 아이템이고 다품종 소량 생산체제에서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겠다고 건방진 생각을 한 것이 제가 IT분야에 몸을 담게 된 계기가 된 것 같습니다. 좀더 자세히 설명하면 당시 회사차원에서 가장 골치 아픈 부분이 사실 재고 부분이었습니다. 그래서 아무도 재고부문은 맡으려 하지 않았고 전임 선배들이 그 부분을 맡으면 책임지고 옷 벗는 자리라고까지 이미 소문이 나 있던 그런 자리였습니다.  그러니 신입사원인 저는 당연히 선배 사수가 없었고 과장도 없는 이상한 조직인 재고통제과에 제가 발령이 나게 된 것이지요. 발령이 난 후 완전히 저는 그야말로 직장 내 왕따 였습니다. 입사동기생 120명이 그룹연수를 같이 받을 때는 현업에 발령받으면 완전 우리세상인 줄 알고 우리 뭉치자고 외쳤건만, 막상 현업에 배치되고 보니 그 들의 목소리 하나같이 새발에 피처럼 보잘 것 없는 존재들 이었습니다. 그런 동기들이 6개월이 지나니까.  모두들 회사의 프로세스 문제점이 어떻다는 둥 어떤 상사가 어떻다는 둥 문제점을 얘기하나 나는 뭐가 문제인지 알 수가 없었고, 때문에 말이 통하지 않는 저는 동기회에도 잘 안 나가게 되고, 그저 친한 동기들 몇 명하고만 나름 고민 이야기만 하고 지냈습니다. 이러다간 정말 왕따 당하고 도태될 것 같아 대학시절 나를 따르는 여학생 후배들과 미팅을 주선하면서 회사 내 인간관계를 유지시켜 나갔었습니다.

이렇게 세월을 보내면서 회사의 재고관리를 보다 구체화 하기 위해 요즈음의 ERP인 당시 MRP-II를 연구 조사하여 이를 이사님에게 도입의 필요성을 건의하였습니다. 보고를 받은 이사님은 좀 어려우니까 아예 논문을 써서 보고를 하라고 지시를 하시고, 마침 당시 계열사로 동양전산학원이 설립되어 그곳에 그룹사 직원들을 보내는 과정에 저를 우선적으로 보내주셨습니다.

저는 이것이 기회이다 싶어 오후 4시부터 저녁 10시까지 하는 6개월 과정의 수업에 최선을 다하였으며 그 결과 수석졸업을 하여 그룹 회장상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럴 수 밖에 없는게 제가 맡은 재고 관리가 매월 완제품보고만 하는 것이기 때문에 남는 시간에 예습 복습과 논문을 썼습니다.  제가 쓴 논문을 이사님께서는 이사회 때마다 이사진들에게 보고를 하고 저는 입사동생들과 OPC 그룹사내에 근무하는 대학 선후배들에게 MRP-II 도입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다녔습니다. 이 결과 OPC에MRP-II 시스템을 도입하게 되었고 결과 이 프로젝트는 실패에 실패를 거듭하여 저는 OPC에서 왕따가 됩니다. 이것은 제가 이 바로 제가 IT부문에 입무하여 뼈저린 시련기를 겪게됩니다.

하지만 이러한 시련이 오늘 제가 IT 컨설턴트가 될 수 있는 바탕이 된 것이 참 아이러니하지요. 


Q : IT분야에서 아이디어 또는 제안했던 것 중, 기억에 남는 것이 있다면, 말씀해 주시지요.


물론 앞서 설명 드렸던 MRP-II 시스템 도입 기획 및 추진과 또 하나는 국내에 SW 개발 기법인 CBD 개발 및 방법론 보급을 위해 1999년 한국컴포넌트컨소시엄(KCSC)의 발기인으로 참여하여 CBD 제조/유통분과 위원으로서 그간 정부의SW 개발 방법론인 Method 1을 관련 연구소인 ETRI SW공학 담당자와 함께 정부에 건의하여 정부의 SW개발 방법론을 CBD 방법론으로 표준화 시킨 바 있습니다. 여기서 관련 연구소인 ETRI SW공학 담당자란 현재 우리협회의 신석규 사업 부회장님이십니다.  세상의 인연이란 참 희한하죠. 그리고 2000년 8월 (주)객체정보기술 대표이사 재직 시절에는 인터넷 방송을 활용한 On-Off Line 교육센터인 AST 교육센터를 개설하여 국내에 CBD 기법을 보급하였으며, 또한 CBD 홍보를 위해 2001년 5월 우리 협회와 제가 대표이사인 ㈜객체정보기술과 공동 주최로 하는 CBD 컨퍼런스를 기획하여 이를 성공리에 이루어 내었습니다. 이때 당시 마이크로소프트 상무이사이셨던 김연홍 사업이사님께서 재정적으로 많은 후원을 해주셨지요. 이 부분은 IPAK 홈페이지의 연혁란에 추가되어야 합니다. 당시 사무국장이 교체되면서 기록이 누락되었던 것 같습니다.

특히 2001년 12월에는 본 협회와 KCSC 공동으로 추진하는 소프트웨어 컴포넌트 컨퍼런스를 기획하였으며, 이때 세계적인 객체기술 표준화단체인 OMG의 Richard Mark Soly 회장의 초청 강연을 이끌어 국내 개발자들에게 CBD 기술 도입의 필요성에 대한 인식을 제고시킨 바 있습니다.


Q : IT 생태계에 지금은 무슨 문제라고 생각하십니까? 이를 어떻게 풀 수 있을까요?


다 아시다시피 S/W 산업이 3D 산업으로 변질되어 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부분이기 때문에 과거와 달리 점점 그 부분의 인력도 저급화되어 가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제 생각에 이를 풀어 갈 수 있는 방법은 S/W 개발 부문의 가치를 회복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SW 개발부문을 SI로 접근하지 말고 조/중/고/특급 인력의 개발단가 하한선을 두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정부에서부터 입찰 시 무조건 최저 단가로 낙찰을 하기 때문에 자연히 SW개발 인건비도 최저 인건비가 되기 때문에 저임금을 허용하는 자격이 낮은 사람을 쓸 수 밖에 없어 자연 3D 산업으로 전락하게 된 것 같습니다. 


Q : 국가나 공공기관의 프로젝트에 많이 참여하시면서 보람 있었던 일들에는 어떤 것들이 있습니까?


별로 좋았던 기억은 없었습니다. 허나 ㈜객체정보기술 재직시설 인터넷 방송을 활용한 CBD 교육 방송을 실시할 때입니다. 홍보차원으로 당시 WIN413 국회의원 선거 인터넷 방송을 무료로 게시하여 경찰청과 검찰청에 끌려갔다가 제가 운영하고 있는 기업이 벤쳐기업과 병역특례 기업이라는 확인을 한 연후에 잘못했다는 자술서를 쓰고 풀려난 사건은 지금도 오히려 제 스스로 벤처 기업가답다는 스릴을 느끼곤 합니다. 때문 제 이름이 인터넷과 언론 매체에 많이 알려진 계기도 되었습니다. 또 하나는 제가 컨설팅한 결과가 얼마나 그 기관의 정책에 반영되었는가 이지요. 한 예로 경남 통영영시의 ISP 프로젝트는 컨설팅 결과가 그 잏 거의 입찰로 나왔으며, 통영 모바일 관광의 아이템의 경우 당시 문광부 장관상까지 받았습니다. 그리고  중소기업인 ㈜뉴파워프라즈마 경우 제가 컨설팅한 결과를 그대로 믿고 따라 컨설팅당시 매출 7억인 회사가 매출 100억대 이상의 회사로 큰 경우가 있었습니다.


Q : IT 분야에 종사하셨던 과거를 되돌아 볼 때 그간 행복하셨나요?


그렇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내가 어쩌다 이 구렁텅이에 빠졌는가 하고 다른 길로 가려고 발버둥쳐 보았지만 이 직업이 제 운명인지 이제는 그대로 순응하고 있습니다. 아마 제 세대가 변화가 많은 세대이라서 그런 것 같습니다.


Q : 공교육은 어떻게 변화되어야 한다고 보십니까? 이공계 살리기를 위해 대학은 어떻게 변해야 한다고 보십니까?


문제가 있다고 생각은 듭니다만 아직 저에게 이렇다 할 지혜는 없습니다.


Q : 고령화 사회로 진입단계에 있습니다. 특히 우리 협회도 시니어들의 노하우를 어떻게 국가자산화하여 국가 신성장동력원으로 삼을 수가 있을까요?


물론 가능하다고 봅니다. 대부분의 지식 또는 노하우를 가진 시니어들은 최소한 수신제가를 하신 분들이라 가정을 하면서, 이분들은 젊은이들과 경쟁을 해서는 안 된다고 봅니다. 경쟁을 하지 말고 젊은이들과 취약계층에게 가벼운 봉사차원에서 자기 지식과 지혜를 전수해 줄 수 있는 자리를 국가나 사회가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Q : 한국의 미래(10  20년 후)를 전망하실 때, 어떤 점이 가장 큰 영향을 미치게 될까요?


한국인의 저력인 은근과 끈기가 교육열과 만나 한국의 미래는 많은 부분에 긍정적이 미래가 펼쳐질 것으로 전망됩니다.


Q : IT 는 어떻게 변화되어 갈까요? 10년 후는 어떤 사람(직업, 전문분야, 장점 등)들이 각광은 받을까요? 다른 업종에서 좋은 점들 중에 IT쪽으로 가져 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신 것 혹시 있으신가요?


어차피 IT는 모든 산업의 근간이 되고 그 산업은 IT와 융합하여 더욱 시너지를 발휘할 것이라 생각됩니다. 때문에 직업은 점점 개인화되어 그 분야가 점점 많아질 것으로 생각됩니다.


Q : 가장 존경하는 멘토는 누구입니까? 어떤 메시지를 받으셨나요?


네 저에게 가장 영향을 많이 주시 분은 최성 교수님이십니다. 이분은 제가 어려울 적에도 항상 제 곁에 계셔주었으며, 인생에 그 누가되었던 가이드가 필요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항상 제 길잡이 역할을 해주셨고요. 그래서 저는 그분을 가장 존경합니다.


Q : 사명(使命)이나 좌우명 있으시면 말씀해 주십시오. 다시 태어나신다면 이렇게 꼭 같이 할 것인가요?


네 좌우명은 제가 고교시절에 갖게 되었는데 지금도 변함이 없습니다.

최선을 다하자, 비굴하지 말자, 포용력을 갖자 이 세 가지입니다.


Q : 오랜 경영자 또는 프리랜서 활동에 어려움이 있었으리라 봅니다. 이를 어떻게 풀었습니까?

혹시 큰 좌절이나 실패가 있으셨다면 이를 어떻게 극복했습니까?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하고 오히려 이용만당 한다는 생각을 가진 적이 한 두 번이 아닙니다만, 무엇보다도 그 이유가 나한테 있다는 것을 자각하고 있었기에 나를 내세우지 않고 그저 수긍하며 묵묵히 일하는 태도로 일관하였습니다.  


Q : 제일 기억에 남는 우리협회의 행사가 무엇이었습니까?


무엇보다도 대한민국 SW공모 대전입니다. 이 행사를 앞으로도 꾸준히 발전시켜 공히 대한민국 최고의 SW 공모대전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Q : 입회를 고려중인 분에게 입회 안내를 하신다면 어떤 점을 강조하시고 싶습니까?


IPAK이 여러분에게 무엇을 해줄 것인가를 기대하지 말고 IPAK 회원 중에 훌률한 분들이 많이 계시고 협회에서는 이들과 커뮤니티를 할 수 있는 커뮤니티의 장을 마련해 준다. 여기서 여러분이 적극적으로 본인의 특기를 보여주면 그 중에 코드가 맞는 분이 나타나 함께 시너지를 낼 수 있는 기회가 생길 것이다. 세상 독불장군 없으니 우리 함께 모입시다라고 할 것이다. 


Q : 우리 협회는 어떻게 가야 할지요? 회원이 젊어질 수 있는 방법은?


이미 젊은 IT 인들이 모임을 가지고 있는 단체가 있습니다. 우리가 이들 단체에 먼저 들어가 친해지고, 이후 IPAK의 역할과 중요성을 일깨우면서 이들과 융합하고 향후 이들이 주인공이 되어야 한다는 당위성을 홍보하는 방법이 있을 수 있습니다.


Q : 회원 한 분을 칭찬해 주십시오 ? 어떤 면이 특히 칭찬할 만 한가요?


박성렬 ETRI 단장님과 장형진 사장님이십니다. 박성렬 단장님은 한때 IPAK내에 IT 협력포럼 회장을 맡으시면서 포럼을 잘 이끌어가 주셨고, 장형진 사장님은 총무로서 포럼 내 회원간의 연결고리와 마무리를 잘 해주셨습니다. 당시 포럼의 규칙은 매월 모임을 번갈아 회원사 방문하는 식으로 하였고, 초청한 회사가 자기회사 소개와 더불어 뒷 풀이를 책임지는 식이었습니다.  때문에 그때 그 포럼의 회원들은 지금도 상당히 가까운 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어쩌다가 이 포럼이 중단되었는지 지금 좀 아쉽습니다.

오랜 시간 이렇게 인터뷰에 친히 배려해 주셔서 감사 드립니다. 회원님에게 건강과 영광이 늘 함께하시기를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