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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음악 산책 - 김진흥 IPAK 자문위원

2011-06-29 13:20:25
관리자

“클래식음악 산책'

[음악의 아버지와 어머니, 바흐와 헨델]


서기1600년은 서양음악역사의 대 전환점이 된 해이기도하다

유럽 전역에 전개된 르네상스시대(14세기~16세기)이후 과학과 천문지리학이 발달함으로써 항해와 탐험이 이어지는 등 사회의 급격한 변화는 문화에도 영향을 미쳐 문학, 음악, 미술 등에도 많은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하였다.  교회와 귀족이 지배하던 낡은 사회질서가 붕괴되고 근대시민사회의 여명이 찾아 오려고 했던 시대,  신 중심의 세계관 대신 인간의 이성과 자연스러운 감정의 표현을 존중하는 계몽사상이 지배했던 시대이기도 하다

1600년부터 1750년경까지의 시대를 “바로크”시대라고 하고 1600년에는 이탈리아의 피렌체에서 “오페라”가 탄생되었고 그것과 더불어 새로운 가창 스타일이 만들어지기 시작한 바로크음악은 150년 동안 번창하면서 수많은 음악가와 작품을 배출하였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큰 성과를 낸 작곡가는 바로 바흐(Johann Sebastian Bach : 1685~1750)와 헨델(Georg Friedrich Handel : 1685~1759) 이라는 두 음악가였다.  음악사의 지각을 변동시키는 변화의 주역으로써 바로크음악을 화려하게 꽃피우고 완성 함으로서 두 사람은 클래식음악의 새 지평선을 연 “아버지”와 “어머니”로 우뚝 서게 된 것이다.

두 사람은 같은 해인 1685년에 독일에서 태어나는 등 특별한 인연을 갖고 있는 듯 하다.

그러나 바흐가 음악 명문가에서 태어난 반면 헨델은 음악과는 관계없는 집안에서 태어났다

독일의 중부 “아이제나흐”에서 태어난 바흐는 음악명문가 집안으로써 16세기 중반부터 18세기 까지 200년 동안 50여명의 음악가를 배출하였다.  바흐의 아버지 역시 아이제나흐 궁정의 악사였으며 바희의 4명의 아들도 음악가로 활약 하였다

그러면 먼저 바흐의 생애에 대하여 잠시 살펴보고자 한다 바흐는 궁정악사였던 아버지의 막내아들로 태어났으며 9세 되던 해인 1694년 어머니를 여이고 다음해에 아버지까지 잃었다. 그래서교회의 오르간 연주자였던 맞형 “요한 크리스토프” 밑에서 자랐으며 형에게서 오르간과 클라비어를 배웠다.  15세 때 교회 성가대에 들어 갔으며 18세 때 교회의 오르간 연주자가 되었다. 1707년 22세 때 “마리아 바르바라” 와 결혼하였으며 23세 때 “바이마르” 궁정 오르간 연주자가 되어 9년간 근무하였으며 당시 많은 오르간 연주곡을 썼다. 1717년 32세 되던 해 “쾨텐” 궁정 악장이 되었으며 이때 많은 연금을 받았다 이 시절이 바흐에게는 가장 행복했던 시절이었던 것 같다. 그때 실내악과 협주곡 등 세속적인 곡도 많이 작곡했으며 유명한 <브란덴브르크 협주곡집>, 아이들의 교육을 위한 <평균율 클라비어곡집> 등 건반 악기 곡도 많이 썼다. 1723년 38세 때 대도시 “라이프치히”의 성 토마스 교회의 음악감독 직책인 합창지휘자가 되었다.  라이프치히에는 두 개의 큰 교회가 있었는데 주말마다 교대로 큰 예배가 행해졌다.  설교 전에 노래하는 칸타타는 연간 50~60곡 만들고 동시에 <요한 수난곡>과 <마태 수난곡> 등 대작을 완성 하였다.  그 것이 5~6년 간이나 이어졌다고 하며 현존하는 약 200곡의 칸타타 중 약 180곡이 이 시대에 만든 것 이라고 한다.  만년에는 시력이 떨어져서 고민을 하면서도 <푸가의 기법>이라는 작곡기법의 집대성에 착수했다. 결국 두 번의 수술에도 불구하고 시력을 잃고 1750년 65세로 생을 마감했다

J. S. 바흐가 많은 작품을 남긴 칸타타 (cantata)는 17세기 초에서 18세기 까지 바로크 시대에 발전한 성악곡의 한 형식으로 독창, 중창, 합창과 기악반주로 이루어졌으며 가사내용에 따라 종교적인 교회 칸타타와 세속칸타타로 나눈다. 다 악장 형식으로 이루어졌으며 서정적이고 극적인 내용을 지녔으나 오라토리오 보다는 규모가 작다.

헨델(Handel)은 앞의 바흐와 같은 해인 1685년 독일 중부 작센 지방의 “할레”에서 태어났으며 평생 결혼 하지 않고 독신으로 살았다. 독일에서만 보낸 바흐와는 달리 헨델은 독일에서 이탈리아로 건너가 거기에서 오페라를 배우고 26세 때 영국으로 건너가 음악가로 활약하였다. 8세 때부터 작곡기법과 음악 전반에 관한 지식 등 음악교육을 받았다. 그러나1702년 헨델은 궁정 이발사이며 외과의사였던 아버지의 뜻에 따라 할레대학에서 법학공부를 시작 하였지만 그 다음해인 1703년 대도시 함부르크의 오페라 반주 오케스트라의 바이올린 연주자로 취직하면서 음악가의 길로 들어섰다. 1706년21세 때 오페라의 본 고장인 이탈리아로 건너가 로마의 “성 조바니”교회에서 오르간을 연주하게 되면서 수 개월 만에 로마 귀족 사회의 인기를 얻었다.  1708년 초기 걸작이라는 오라토리오 <부활>이 극장에서 상연되었으며 여기에서의 대 성공은 이 대본이 1500권이나 발행되었을 정도로 당시로서는 경이적인 숫자였다. 이탈리아에서 3년 지내는 동안 오페라를 배우고 잠시 다시 독일의 지방도시의 궁정 악장으로 변신하였으나 3개월도 지나지 않아 1711년 런던으로 건너 갔으며 그 후 정주해서 1726년 영국에 귀화해 영국 국적을 얻었다.

돈을 버는 데는 천부적인 소질을 타고 났는지 헨델은 단지 음악을 만드는데 만족하지 않고 사업으로 연결시켜 대 규모 연주회를 연다든가 나중에는 오페라 극단까지 만들어 대 규모 극장에서 공연하는 등 흥행에 성공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영국에서의 인생은 성공과 실패 등 파란만장했던 같다.

1717년에는 영국의 국왕 조지 1세의 템스강 물놀이를 위하여 <수상의 음악>을 작곡하여 대단한 성공을 거두었다. 이 <수상의 음악>은 특히 트럼펫, 오보에, 호론 등을 중심으로 한 곡으로 음악이 명쾌하고 대단히 밝은 특징이 있다.

52세이던 1737년에는 3개 오페라 상연에 실패하여 뇌졸중 발작으로 쓰러지기도 하였다.그런 가운데서도 1741년 가장 유명한 작품 <메시아>를 발표하여 대 성공을 거두었다.

1751년부터 시력이 나빠지고 건강이 악화되어 1759년 74세로 생을 마쳤다.

평생 왕의 총애를 받았으며 영국의 국가적인 음악가로서 존경을  받아 장례식에는 3000여명의 애도 속에 “웨스트민스터”사원에 묻혔다.

헨델이 많이 작곡한바 있는 오라토리오(Oratorio)는 17세기 이탈리아에서 발생하였고 독창, 합창, 관현악으로 구성되어있으며 대부분 종교적인 내용이나 성경에 나오는 이야기를 극화하여 교회나 음악회장에 연주하는 대 규모 악곡으로서 무대연기 없이 음악회 방식으로 공연되는 것이 특징이다.

음악의 아버지 바흐와 어머니 헨델 두 사람의 주요 작품을 살펴보면 먼저 바흐는 오페라를 제외한 모든 장르의 작품을 썼다. 성악곡으로는 교회칸타타( 약 200곡 ), 수난곡( 2곡 ), 오라토리오( 2곡 ), 미사곡( 5곡 ) 세속칸타타( 약 20곡 ), 그리고 다수의 가곡과 코랄도 있다. 기악곡으로는 협주곡( 23곡),실내악곡( 40곡), 오르간곡( 약 240곡 ), 클라비어곡( 약 220곡 ) 등이 있다. 이 중에서 가장 잘 알려진 것이 <브란덴부르크 협주곡> 그리고 C M 송으로 잘 쓰이는 관현악 모음곡 제3번 <G 선상의 아리아>, <무반주 첼로 모음곡>, 피아노 학습을 위한 <인벤션>과 <평균율 클라비어곡집> 등이 있다.  헨델은 46곡의 오페라, 32곡의 오라토리오를 비롯하여 관현악, 바이올린, 쳄발로, 오르간분야에 이르기 까지 많은 량의 교회 음악은 물론 많은 기악 음악 작품을 남겼다. 그의 음악은 명쾌하고 호탕하고 신선하여 생생한 리듬이 돗보이는 특징이 있다.  이 중에서 관현악곡 <수상의 음악>과 오라토리오 <메시아(Messiah)>가 유명하다. 특히 <메시아(Messiah)>는 예수 탄생의 예언에서 시작하여 그의 고난과 죽음, 그리고 부활과 영생에 이르기 까지 예수의 이전과 이후의 이야기를 담은 장대하고 위대한 음악적 서사시이다. 매년 12월 성탄절이 있는 시기에는 많은 음악회가 열리는데 그 중 헨델의 <메시아>는 가장 많이 연주되는 작품 중에 하나이다.         .(끝)  


김  진  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