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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 에세이(여호영) - 나의 아버지 여태기 역정기(歷程記)

2011-07-29 11:01:59
관리자
 

나의 아버지 여태기 역정기(歷程記)


1983년 여름 여의도 KBS 본사 벽은 온통 이산가족 찾기 쪽지들로 가득 차 있었다. TV에서는 상봉으로 그간의 설음을 한껏 씻어내는 카타르시스식의 눈물의 세러머니가 방영되고 있었다. 이때 전국에 퍼져 있는 여씨도 모두 만나 종업(宗業)을 일구어 나가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선 주변부터 또 연락이 닿는 사람부터 서로 만난다. 의령여씨대종회를 결성하기 위한 준비모임을 80년대 중반 수 차례 가진 다음 대종회를 발기.창립 한다. 여기서 초대와 2대 대종회 회장직을 수행했다. 지금은 대종회 고문으로써 종사에는 한번도 빠지는 일이 없이 지극정성으로 종업을 거들고 있다. 학생들 이름표를 유심히 본다. 여씨를 찾고 있다.


의령여씨장학회를 결성하고 장학기금 출연을 권유한다. 종친들이 많이 사는 곳의 학교를 방문하여 종손들 중 성적이 상위 10%이내에 드는 학생들을 추천해 달라고 직접 부탁하려 다닌다. 장학금을 받은 학생 중에는 지금 미국최상위급 대학에서 박사학위과정을 수료한 종손도 나타났다. 이들이 또 장학기금을 출연하기를 바라고 있다.


5.16 다음해에 재경사무관으로 임(任) 받았다. 휴일에도 집 근처 대학도서관에서 하루 종일 학습한다. 직장에서는 항상 활기찼다. 일을 시작할 때 완성의 모습을 그려보면서 그에 맞게 시작했다. 품의 문을 펜이나 만년필로 쓰는데 글씨는 왕휘지도 놀랄 정도다. 왕따 중인 직원이 전근을 가더라도 전별금을 앞장서서 모아 준다. 그 자리를 떠나더라도 서류가 깨끗하게 마련되어 있어야 한다. 5.16 전 박정희 소장이 신당동 살 때 그 집 두 세 집 건너 전매청장이 살고 있었다. 매일 저녁 찾아오는 손님 많고 밤늦게까지 왁자지껄 하는 소리가 담을 넘는다. 박 소장이 혁명을 해서 저놈부터 잡아넣을 거라고 벼르고 있다. 혁명 후 바로 청장을 조사한다. 아무런 문제점이 없어 바로 방면한다. 제반 문서처리를 사전에 철저하게 한 덕분이었다. 청장은 바로 고마움을 표한다. 


불편부당하게 처신했다. 직장 생활하면서 누구의 사람이다 또는 무슨 파다, 무슨 포럼 멤버다 등의 꼬리표가 붙는 것을 사양했다. 비밀은 없다. 비밀이 만들어 지는 순간 다섯 사람이 이미 안다(양자, 벽, 바닥, 천장). 없는 사람에 대해서는 흠잡는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좀 지나면 듣고 있는 사람이 없었던 그 사람에게 그대로 전한다. 세 자식을 불러 놓고는 흡연 이야기를 한다. 조실부(父)하고 외롭고 허전하여 담배를 일찍이 피웠으나 백해무익임을 깨닫고 있다. 너희들은 가능하면 안 피웠으면 한다. 이 말을 들은 삼형제는 담배를 피우지 않게 된다. 장남(健榮)이 육군사관학교에 입학할 때부터 학부형친목회의 총무를 맡으며 육사 수뇌부와 학부형들의 의사소통 통로 역할을 수행했다.


전매청(옛 재무부의 외청, 담배인삼공사 전신)의 인명사전이다. 모든 직원들의 신상을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다. 고려대학교 총장에게 전화를 건다. 아들 셋이 동시에 등록을 해야 하는데 디씨(디스카운트)없습니까? 없습니다. 늦지 않게 제때 내세요. 퇴직 시 퇴직금은 학자금 상환으로 상계 처리하여 별도의 일시금이나 연금이 없다. 수유리 거주 시 새벽에 삼각산 계곡물에 사계절 냉수마찰을 하다. 인삼 약효의 과학적 연구, 체계적 삼업(蔘業)의 진흥, 해외수출 진작을 위해 인삼연구소 설립을 주도하다. 연구부장을 맡다. 85년에 정년퇴임 하다.


퇴임 후 서예를 시작한다. 지금까지 벼루에 먹물이 마르지 않는다. 회선지가 먹지가 될 때까지 쓰고 또 쓰고 한 연습지가 한 트럭분이 된다. 붓의 끝이 유하고 길어 그 깃털을 통해 예술이 탄생한다. 혼, 정신과 정성, 지성을 붓끝을 통해 화선지에 전달하는 것이 서예다. 한 획 한 획이 독자적인 생명력과 의미를 지니고 있다. 묵의 농담, 번지는 정도, 필속(筆速), 장력의 크기, 자간의 크기, 여백의 의미, 구성, 낙관의 품격 등이 모두 어우러져 하나의 예술이 된다. 국전에서 입선을 몇 회 했다. 다음은 특선을 몇 회 했다. 지금은 초대작가다. 현재 직업은 서예가다. 작품의 머리 낙관은 자강불식(自彊不息)의 자강을 쓴다. 호는 하림(夏林)이다. 배가 나오지 않고 몸무게도 그대로 유지한다. 바지가 작아져 못 입은 적이 없다. 10여 년 전까지는 테니스를 즐겼다. 목소리는 항상 원기 완성하다. 청년 목소리다.


6.25 동란 전에는 부산에서 제법 큰 적산가옥을 사서 살았다. 피난민들이 부산으로 밀려 와서, 시에서는 강제로 이들의 거처를 할당 해 줬다. 여러 세대들과 함께 살았다. 부산피난시절 공무원들은 흥청망청 했으나, 야간대학을 다녔다. 동아대학교 정치경제학과를 수학했다. 피난 정부가9.28 서울 수복 후 서울로 옮겨갈 때 함께 서울로 갔다. 만약 피난정부가 목포로 갔었더라면 목포 사람들이 서울에 많이 살았을 것이다.


16세(世) 承澤께서 하동으로 오셨다. 백두대간의 맨 마지막 구지봉에서 정남향에 위치하고 있다. 임란 전후였다. 일제는 비폭력 평화의 3.1독립운동을 폭압으로 다스렸다. 피살 6,670명, 부상14,600명, 투옥 52,730명이었다. 한민족의 뜻을 모아 상해임시정부가 수립되었다. 임정 6년(1924년), 하동군 하동읍 화심리에서 태어났다. 의령 여씨 32세. 태어난 시기는 조선도, 하동도, 집안도, 모두 가난했다. 단칸방 오두막집에 한 식구가 살았다. 보리 고개는 민초들의 얼굴을 붓게 하고 변이 커져 항문을 아프게 한다. 초근목피로 연명하던 시절이다. 소나무 껍질을 물에다 씻으면 고랑 물이 온통 붉게 물들었다.


경남 하동은 신라와 백제의 접경지역이다. 양국의 사신들이 군사조약을 맺은 곳이다. 겨레의 성웅  이 충무 공께서 백의종군 시 지나가셨던 곳이다. 섬진강과 나란히 가는 국도 19호는 전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경관을 자랑한다. 처갓집 악양은 슬로씨티, 대봉감, 대하소설 '토지'의 무대로 유명하다.. 1745년(영조 21년) 하동부사 전천상이 1만평 모래땅에 해송을 심다. 방풍과 방사림이다. 백사청송이다. 하동 송림을 마음의 고향으로 여기고 있다. 섬진강 다리 준공식 때 다리 양 옆으로 학생들이 도열했다. 그 중 한 명이다. 현재는 재건축되어 당시의 다리는 사라졌다. 물이 꽁꽁 어는 추운 윗목 책상 앞에 앉아 공부하는 아이에게 어머니는 이제 그만 자거라 하신다. 어머니 아직 촛불을 끌 때가 아닙니다. 학교 다녀와서는 뒷산에 가서 (땔감)나무를 해 온다. 자산은 없어도 어머니(金武順)의 사랑이 있었다. 방과 후 밭에서 일하는 어머니를 도우려 가면 책상머리로 가라고 한다. 지식과 지혜로 먹고 살아야 한다. 지식과 지혜로 이 세상을 살아라. 밭농사 이 고생은 나 혼자서 끝 낼란다.


아버지(敬鎬31세)가 돌아가시다. 황달로 37세에 돌아가셨다. 약관 12세에 가장이 되다. 막내 동생은 부의 상여가 나가는 날 태어났다. 동네 사람들은 유복자가 아니라 한다. 이 아이(泰明)가 지금은 8순을 바라보고 있다. 미국 보스톤 마라손 대회에도 참가하고 있다. 보통학교 졸업 때 최우등생으로 도지사상을 받다. 할아버지는 손자가 상을 받는 모습을 보고는 덩실덩실 춤을 춘다. 하동보통학교를 졸업하고 하동엽연초조합에 사환으로 들어가다. 담배 재떨이 치우고 사무실 보조 일을 하다. 그 후 정직원으로 승격되다. 조선총독부 산하 기관의 직원이 되다. 이 항령 신임군수를 차부로 마중 나갔으나 못 만났다. 너무 젊고 또 덩치도 적은 그를 누구도 군수인지 몰랐다. 이 군수는 혼자 군청에 들어가니까 수위가 못 들어오게 제지한다. 새로 부임하시는 군수님을 모시려 전 직원이 차부로 나갔다고 한다. 해방 직전의 모습이다. 장인 되실 분의 동생과 같이 근무했다. 형(金相奎)에게 좋은 사위 감 있으니 머리에 된장을 싸매고 뛰어가 봐라 한다(빨리 뛰다 넘어지면 상처가 나게 되는데 그것을 대비함). 장인은 악양에서 농회장을 역임했다.


정부 수립 전 해 가을에 결혼하다. 여순반란 사건 후 공비들이 지리산으로 숨어들어 갔다. 이들이 야밤을 이용해 동네로 내려와서는 공무원들을 괴롭혔다. 열심히 저축을 했다. 불안을 느껴 부산으로 전근을 간다. 내자(김임악)는 가난하게 된 친구의 집에 밀가루 한 포를 머리에 이고 가서 주고 온 마음이 따뜻한 분이다. 항상 존댓말로 부부간 서로 대화한다.  일생을 허리띠 풀고 풍족하게 음식과 약주를 든 적이 없다. 낮잠 안 주무신다. 몸이 편찮아 결근한 적이 없다. 자녀들도 개근상을 받는다. 말을 많이 듣는 편이다. 경청한다. 말수가 적은 편이다. 화를 내지 않는다. 서두르지 않는다. 눈 위 발자국도 가지런하게 만들면서 걸고 있다. 다음 오는 사람에게 준범이 되어야 한다.


가훈은 건강. 건강은 효도의 으뜸이다. 자제로는 건영(전 서울시 국장역임), 호영(지아이에스 부회장, 고대대학원 겸임교수), 두영(코스닥상장기업 광진실업 CEO), 귀희(중등학교 과학교사)를 두고 있다. 여씨 일족모두가 건강하게 살기를 원한다. 남에게 폐 끼치지 않고 함께 잘살기를 원한다. 한국 현대사에서 선비의 표상이시다. 띠가 일순하는 12년 더 사는 해에 100세가 된다. 천수를 기원하며 이 글을 올립니다.  차남 浩榮. 謹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