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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음악 산책(4) -김진흥 IPAK 자문위원

2011-07-29 14:58:48
관리자

“ 클래식 음악 산책 “


< 음악의 신동 모차르트 와 위대한 악성 베토벤 >


인류가 만든 음악 중에 가장 위대한 아름다움을 실현하고 최고의 번성 기를 이룩한 것은 고전파음악이라 할 수 있다

1600년부터 시작된 클래식음악은 바로크시대음악을 거쳐 1750년부터 1825년 경 까지가 고전파음악시대이다. 교향곡의 아버지 Joseph Haydn (오, 1732~1809), 음악의 신동 Wolfgang Amadeus Mozart (오, 1756~1791), 클래식음악의 거장 Ludwig van Beethoven (독, 1770~1827) 이들 3명의 위대한 음악가가 오스트리아의 “빈”을 중심으로 활약하였기 때문에 “빈 고전파” 라고도 한다

그들의 작품은 지금도 음악회를 화려하게 장식 할 뿐 아니라 우리에게 가장 잘 알려진 음악가이도 하다. 당시의 시대적 배경을 살펴보면 18세기의 유럽은 계몽사상의 시대였다 그때까지의 종교적 권위나 루이 14세와 같은 절대군주에 대하여 반발하고 인간 의 이성이나 개인 또는 자연 그 자체를 중시해서 구체제와 낡은 습관을 반대하고 종교를 비롯해서 정치, 사회, 교육에 까지 새로운 질서를 수립하고자 했다 이와 같은 계몽사상의 물결이 몹시 거친 가운데 자유와 독립을 내딛고 1776년에 미합중국이 탄생 하였으며 1789년에는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고 같은 무렵 영국에서는 산업혁명이 시작 되었다 이와 같은 흐름은 음악가의 삶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본 장에서는 인류 음악사에 위대한 업적을 남긴 모차르트와 베토벤에 대하여 그들의 생애와 작품에 대하여 이야기 하여 볼까 한다.

모차르트는 1756년 오스트리아의 잘츠부르크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레오폴트 모차르트는 잘츠부르크 대사교 궁정악단의 바이올린 연주자였으며 훗날 부학장 까지 출세했다 그의 아버지는 모차르트가 오르간이든 바이올린이든 가르쳐주기만 하면 금방 연주 하는 등 어릴 때부터 뛰어난 음악의 천재성을 알아보았다 그래서 아버지는 6살 된 모차르트를 데리고 유럽 연주 여행을 하였으

며 이탈리아에서는 오페라를 독일에서는 교향곡에 심취하는 등 틈틈이 작곡도 공부하였다. 여덟살 때 첫 교향곡1번을, 열한살 때는 첫 오페라 <바스티안과 바스티엔>을 작곡하였다 그리고 열네 살 때는 아버지와 함께 이탈리아를 여행하다가 11분짜리 곡을 단 한번 듣고 정확히 기억해서 악보를

적어 내 사람들을 놀라게 하기도 하였다. 15세 이전에 소나타, 교향곡, 오페라까지 무려 100곡 이상의 곡을 쓰면서 연주를 잘하는 꼬마 천재에서 위대한 작곡가로 이름을 떨치기 시작 하였다

당시로서는 대부분의 음악가들은 궁정이나 귀족 밑에서 일을 하였다 그러나 모차르트는 이들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예술가로서의 자유를 찾는 길이라 생각 하였다, 모차르트는 잘츠부르크 궁정음악단에서 오르간 연주자로 잠시 일하기도 하였으나 1781년 25세 때 문화와 경제의 중심이며 음악가들에게 꿈의 도시인 빈으로 건너가 그의 빈의 시대가 시작 되었다.

1782년 아내 콘스탄체 베버와 결혼 하였으며 1786년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 1787년 오페라 <돈조반니>, 밤에 정원에서 연주를 위한 기악곡 <아이네 클라이네 나하트 뮤직> 등을 발표하는 등 빈에서의 처음 5년 간은 모차르트의 자유음악가로서의 인생은 순조로웠다 또한 피아노 연주자로 명성을 떨쳤던 그는 예약연주회를 자주 열고 피아노 협주곡, 실내악 등을 발표하는 등 성공을

거두어 많은 돈을 벌기도 하였지만 얼마 못가 모두 탕진하고 말았다 모차르트 자신도 경제감각이

없는데다가 도박을 좋아하기도 하였다 아내 콘스탄체 마저 낭비가 심했던 것 갔다.

그 후 1787년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모차르트는 상심에 젖은 나머지 건강이 급속히 나빠졌다.

그러나 가난과 병마에 시달리면서도 모차르트는 1788년 그의 3대 교향곡 <제 39, 40, 41(주피터)>를 이 시기에 작곡하였다 그가 세상을 떠난 해에도 오페라 <마술피리>, 레퀴엠(미완성)> 등을 작곡하였으며 오페라 <마적>의 첫 공연이 성공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끝내 1791년 모차르트는 35년의 짧은 생애를 마감하였다 그는 화성음악을 중시하고 소나타형식을 확립하는 등 고전음악을 크게 발전시켰을 뿐만 아니라 20여곡의 오페라, 41개의 교향곡, 실내악, 협주곡 등 1000 여곡에 가까운 여러 장르의 음악을 남기는 등 그의 뛰어난 재능으로 인류사에 영원히 남을 위대한 업적을 남겼다.

다음은 베토벤의 생애와 음악에 대하여 이야기 할까한다.

하이든과 모차르트를 이어서 고전파음악을 정점으로 인도하고 완성시켰으며 낭만파음악의 길을 개척한 위대한 거장 음악가로 회자되고 있을 뿐 아니라 외모에서도 엄격하고 강한 의지가 엿보이는 표정과 독특한 머리 모양을 가진 것으로 기억되는 그는 모차르트 보다 14년 뒤에 1770년 독일의 본에서 태어났다. 바흐나 모차르트처럼 베토벤의 집안도 음악가의 집안이었다. 네덜란드에서 이민 온 할아버지는 쾰론 대주교 선제후의 궁정악단 단원으로 시작하여 음악감독의 자리까지 올랐고 아버지 요한 역시 궁정악단의 테너가수였다. 할아버지의 지위 덕분에 베토벤의 집안은 처음엔 부유한 편이었으나 베토벤 세살 때 할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집안형편이 차츰 기울어지기 시작하였다.

베토벤은 어릴 때부터 음악적인 재능을  보여 여섯 살 때 대중 앞에서 연주를 하기도 하였다.

아버지는 아들을 “제2의 모차르트” 라고 선전하며 아들의 재능을 이용하여 돈을 벌어 보겠다고 연주여행을 다녔지만 그다지 성공하지는 못했다 자신의 계획이 물거품이 되자 아버지는 자주 술을 마셨고 가세는 더욱 기울어 들어 베토벤은 11살 때 학교를 그만두게 되었다 이와 같이 비록 가정환경은 불우하였지만 우연한 기회에 궁정의 오르간 연주자인 네페를 만나 그로부터 음악뿐만 아니라 여러가지 교양 등 훌륭한 가르침을 받았으며 1782년 12세 때 궁정예배당으로 들어가 네페의 보조 연주자가 되었고 2년만에 정식 연주자로 임명되었다. 5년 뒤 17세 때 베토벤은 자신의 고용주인 선제후의 후원으로 음악의 중심도시 빈으로 가게 되었다. 여기에서 베토벤은 모차르트를 만났으나 2주도 되지 않아 어머니가 위독하여 급히 본으로 돌아가 결국 모차르트에게서는 지도를 받지 못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아버지의 알코올 중독은 점점 심해졌다  불과 17세 나이에 알코올 중독자인 아버지와 2명의 동생을 책임져야만 했다. 1792년 여름, 본을 방문한 당시 60세인 하이든은 베토벤의 재능을 인정하고 그를 제자로 받아들여져 빈으로 온 22세의 베토벤은 향학열과야망으로 혼신의 힘을 쏟았다 1794년 하이든의 곁을 떠났지만 그의 수업 중에 베토벤은 피아노 즉흥연주로 귀족들 사이에서 피아니스트로서 명성을 얻었고 그 후 작곡가로서의 지위를 확립하는 등 사교계의 유명인이 되었다. 그러나 1798년경부터 귀에 난청 징조가 나타났으며 성격이 점점 까다로워지고 신경질적으로 변해갔다 한 때는 자살까지 생각하였지만 이를 극복하고 예술가로서의 강하게 살아가려는 결심을 하게 된다 이때를 기점으로 피아노 소나타 <비창> <월강> <템페스트>, 교향곡 제1번 등을 작곡하였고 그 후에도 음악가로서의 치명적인 장애에도 불구하고 나폴레옹에게 바친 교향곡 제3번 <영웅> 을 비롯해서 1803년부터 10년 동안 그 유명한 교향곡 제5번<운명> 과 제6번 <전원>을 포함한 6개의 걸작 교향곡을 만들어냈다 유일한 오페라 <피델리오>와 <피아노협주곡 5번> 등도 이 시기의 작품 중 하나이다. 49세가 되자 베토벤은 귀가 완전히 먹어서 의사소통을 하기조차 어려워졌으며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서는 노트를 갖고 다녀야할 정도였다. 베토벤의 중요 작품을 보면 교향곡(9곡), 피아노소나타(32곡), 바이올린소나타(10곡)그리고 현악 4중주곡(17곡) 등 다수의 실내악곡이 있으며 오페라(1곡), 피아노협주곡과 바이올린협주곡 등 모든 장르에 걸쳐 불후의 걸작을 작곡했다 특히 베토벤의 교향곡 중 <운명>과 함께 대작으로 손꼽히는 제9번 <합창>은 사람들은 이 작품을 일컬어 “인간의 힘으로 쓸 수 있었던 가장완전하고 위대한 곡, 모든 사람들에게 호소하여 압도적 감동으로 이끄는 곡” 이라 한다. 더욱이 연말에 자주 연주되는 이 곡은 환희와 인류애의 메시지를 담고 있어 연말 분위기에 더욱 잘 어울린다. 평생 독신으로 지낸 베토벤은 1827년 3월 그의 나이 57세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장례식이 거행되는 날 빈의 모든 학교는 쉬고 상점은 문을 닫았으며 장례식에 무려 2만 여명의 조문객이 참석하여 위대한 악성의 죽음을 애도했다.

  (끝)


                                                            자 문 위 원 ,    김 진흥